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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 에켈뢰브(작성중)

edwannabefaye 2022. 9. 20. 07:48

1968년 4월 2일

막심 고리키의 나의 대학을 방금 읽었다. 이제 오늘 읽을 책이 없다-이 삶에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음을 아는 일이다. 고통과 절멸 앞에서의 같은 공포, 같은 무의미를 경험한. 그때는 혼자가 아니다.

사회복지과에서 수리공들이 작업하고 간 자리를 청소했다.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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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 9일

온전하고 깨끗하기만 하면 어딘가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망가질 때까지 쓰고 버리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더 이전 시대에 훨씬 어울렸을 것이다. 나는 자동차와 플라스틱, 그리고 이 시대가 그것으로 우리를 질식시킬 모든 불필요한 잡동사니를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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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10일 

청소일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 중 한 곳에서 한 여성이 앉아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야간학교 때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다. 우리는 독서 이야기를 했다. 좋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았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이 직장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미납 세금은 많이 남았는지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빛깔 고운 사과를 한 알 받았는데, 50크루나 지폐를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저 대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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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15일

하리 마틴손은 '탈출구'에서 가난한 사람이 비통해하고 이따금 공격적이 되는 이유에 대해 썼다. 그는 이를 '결핍의 불안'이라고 한다. 인생의 약속과 이상이 늘 공허하게 무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수천 년의 실망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확실히 가난한 사람은 부자보다 시기심이 더 많은데, 가난한 사람은 가장 간단한 일 앞에서도 결핍의 불안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이런 결핍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모든 것을 과대평가하고 무한히 많은 것을 과소평가한다. 이는 가난의 가장 깊은 비극이다. 결핍의 불안은 결핍 자체보다 더 나빠진다. 사람을 과도하게 긴장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어느 날 먹을 것이 없는 바로 그 순간 삼켰던 모든 우울이 올라오고, 그때는 두 가지 요리의 음식이 아니라 온 세상이 없는 듯하다. 마틴손은 그렇게 썼다.
   이런 구조 변화를 따라가기란 어렵다. 아, 사람들이 이 단어를 얼마나 싫어하던가. 우리 저임금노동자에게는 아마 최악일 것이다. 교육을 받았든, 못 받았든 자신을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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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성숙은 자아에 대한 유대감보다 더 큰 유대감을 의식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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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 5일

예테보리의 몇몇 청년은 "그 이후로 계속해서"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서는 개발도상국과 부자 나라의 관계를 지적한다. 개발도상국이 우리와 똑같은 표준을 갖추려고 했다면 지구의 자원은 1년 이상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왜 이에 관한 이야기는 더 없는 것일까? 왜 언론은 더 많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예를 들어 언론은 많은 스포츠 관련 지면 중 한 면을 할애하여 이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다. 청년들 덕분에 무언가 말을 하게 된다. 우리 인류가 바뀌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 지금 친애하는 집배원이 온다. 광고지뿐 아니라 재미있는 우편물이 집배원에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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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 17일

아, 자기와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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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 28일

아이였을 때 살수차가 칼스쿠가 도로를 달릴 때 거리의 먼지 냄새가 얼마나 좋았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맨발로 살수차를 뒤따라 걷곤 했다. 차가운 물줄기를 느끼는 일은 재미있었다. 아무것도 전과 같지 않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처럼 사기 상술에 넘어가 여름을 떠맡는다. 모든 상점이 수영복, 물놀이 의자, 물놀이 공, 그리고 광고에 따르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수천 가지 물건으로 진열장을 장식한다. 사람들은 야단법석을 떠는 닭들처럼 주택과 자동차, 여름 별장 사이를 돌진한다. 그러고는 거의 대부분 여름 별장에서 할일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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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9월 18일

그저께 밤에 누워서 다시 나 스스로를 생각했다. 정녁퇴직할 때까지 청소할 힘이 남아 있을까? 허리, 다리, 머리 등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청소할 힘이 없다. 계단 청소를 면한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계단 청소로 버는 돈은 기름보일러를 설치할 때 받았던 대출을 갚는 데로 바로 나간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계단 청소일을 해야 한다. 다른 모든 것도 더해서. 어떻게 힘을 내야 할지 밤에 누워서 생각했다-그후 최소한 아침에 일어날 때 충분할 정도로 활기찬 느낌이다. 멕시코에서는 불안이 멈추지 않았다. 어젯밤에 일곱 명이 살해되었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올림픽 개최 취소 요구는 계속된다. 멕시코만큼 억압이 심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보겠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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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8월 30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위해 옷을 입고 있는 모든 신문배달원과 청소부를 생각했다. 고운 도매상 사모님처럼 다시 잠이 들었지만 잠시 후에 일어나서 '독자 코너'에 내 글이 실렸는지 확인하려고 우편함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오늘은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다. 실망. 이제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독자는 좀더 자주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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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9월 17일

사실 어떤 작가도(어쩌면 누군가는) 나를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처럼 모든 작가는 줄 것이 있다. 모호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 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을 때 그 두 가지 모두에서 일부 경험하게 된다. 완전히 무의미한 사람은 없다. 책세상에서의 나의 방황을 생각하면 다행히도 나는 노동자 출신 작가와 함께 시작했다. 읽기 쉽고 내가 속해 있는 환경 출신의 작가로. 그 독서 기간이 지나면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기 이외의 집단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계속 알아보게 된다. 또한 역사적 사건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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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리드의 날

우리가 크론할렌의 먹을거리 천지 사이를 걷는 동안 나는 친숙한 인용구들을 생각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거리에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22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자기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거리의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뒤처지고 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삶을 살고 있으며, 또한 늘 그래왔던 것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은 지속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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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을 잃지 않고 청소하는 기술에 대해

우리는 우리를 잡아채기만 할 뿐인 무서운 체제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느낌이 들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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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직원들이 몇 분 지각한다면 급여 일부가 깎인다. 우스운 일이다. 규정을 지키느라 그들은 교통사고를 내서 본인도, 다른 사람들도 죽일 수 있다. 오늘 한시도 빼놓지 않고 신문배달원과 집배원을 생각한다. 오랫동안 신문배달원으로 일해서 추운 날들을 기억한다.
차에 치여 다쳤을 때 그 일을 그만두었다. 오후 3시인데, 소름끼치는 날씨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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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의 딜레마는 이윤과 대중의 구매력을 동시에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위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위기에서 헤어 나오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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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아버지의 날을 앞둔 저녁

본인이 볼 수 있는 것과 취할 수 있는 것 이상에는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그런 식이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지구의 미물인 우리 모두가. 가끔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석기시대에서 원자력시대로 가는 것 같다. 동일 문화를 지닌 같은 나라에 사는 개인 간의 거리마저도 끔찍히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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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청소 일터 중 한 곳에서 커피잔들을 씻었다. 오늘 반장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말했다.

 

- 마이아 에켈뢰브,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