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게 다르게 사는 것이었으면 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다른 살을 살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요.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깨닫는 것이었으면 해요. 하지만..." (베이)
"하지만?"
"그냥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따르기를 강요할 뿐인 경우가 너무 많아요."
내가 시카고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던 당시, 폴란드 출신 인권 변호사로서 폴란드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1989년에 고국의 새 헌법 제정에 참여한 바 있는 빅토르 오시아틴스키가 초빙교수로 와 있었다. 키가 작고 불룩 나온 배에 발그레한 뺨을 지닌 그는 새끼손가락에 조그만 루비가 박힌 인장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빅토르는 '입헌정부는 무엇으로 정의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때 그가 내놓은 답이 놀라웠다. 그는 입헌정치란 권력 분립도 아니고, 사람이 아닌 법을 통한 지배도 아니며, 그밖에 우리가 배워 온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했다. "입헌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복종과 반란 사이에서 가능한 한 많은 선택지를 생성해 내는 정치 형태를 가리킴니다. 입헌주의 체제는 이 둘을 양극단에 놓고, 그 사이에 최대한 너른 공간을 펼쳐 놓습니다. 이 말은 곧 독재란, 인민에게 위반 아니면 복종이라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아주 단순한 선택만을 허용함으로써 이견의 여지를 없애 버리는 체제임을 의미합니다."
교도소 대학은 교육에 관해서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 관해서도 거의 모두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한 가지 질문, 즉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내 목표는 기존의 지지자들을 흡족하게 하는 것도, 회의주의자를 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 나는 교도소 안에 자유교양대학을 세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옹호자 입장에 서서 쓰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이 일에 내재하는 복잡성을 드러내려 애썼다. 교도소 대학에 참여한 학생은 거의 다 중범죄로 형을 받았고, 죄목은 대부분 폭력이었다. (절대적 정당성을 갖고 대량 구금을 비판하는 이들은 폭력 범죄에서 비롯하는 윤리적 정치적 복잡성을 무시하거나 최소화하는 유감스러운 경향을 보인다.) 한편, 나는 거의 모든 처벌 형태가 불행히도 거울을 비추듯 대상자에계 폭력을 되돌려 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가 발을 들여 본 교도소는 죄다 인종적 계급적 불평등을 영속화하고 강화하는 폐기물 처리장 같았다. 그 결과 교도소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하고 널리 퍼진 공공기관으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좀먹고, 본래 복무해야 할 대상인 공화국에 위해를 가한다.
처음 교도소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이 논란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교정 체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공직자와 직업공무원 중에, 더 나아가 일반 시민 중에 대학 및 중등 이상 교육과정을 끈질기고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아직 모른다. 반대로 재소자가 그런 기회를 누리는 데 분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대체로 정확히 인지한다. 내 경험상 재소 학생들은 유독 그런 비판을 놀랄 만큼 예민하게 감지하곤 한다. 그리고 그 기회를 얻으려고 자신이 쏟은 노력, 원칙과 정책 차원에서 대학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입장과 별개로, 비판자의 논리를 이해하고 일부는 동의하며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학생들은 오래 미뤄 두었거나 좌절당했던 의지를 되살리거나 깨닫기 위해 개인적 투쟁을 치르며, 반항심과 냉소주의, 소외감을 주로 불러일으키는 기관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소중한 무언가를 돌보고 키우는 데에 몰두한다.
특정 영역에서 훈련받는 대신에 대단히 깊고 폭넓은 열정으로 자유교양학을 공부한 바드교도소사업단 졸업생들이 현재 다양한 분야, 사업, 직업군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편, 출소 전에 우리가 협력자들과 함께 개발한 혁신적인 자유교양학 후속형 직업훈련을 이수한 학생들은 해당 분야에서 활발히 경력을 쌓고 있다. 바드교도소사업단 졸업생 중 출소 후 취업률은 65퍼센트에서 80퍼센트 사이로 나타난다. 일회성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러한 만큼, 집중적이고 수준 높고 장기간에 걸친 자유교양학 공부와 장래 '업무 현장'에서의 성공 사이에 강력한 연관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금의 시대가 야기한 추가적인 장애물은 차치하더라도, 교육이 아니었다면 졸업생 중 상당수가 최악의 실업률과 소득 저하에 직면했을 것이다.
"교도소에서 지내기가 점점 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다시 이 공간을 불편하게 느낄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그 결과 대학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인종화한 교도소 공간과 관련해, 그 안에서 활동하는 바드교도소사업단의 입지는 대단히 복잡하다. 학생이 자기 삶과 사회에 대해 사려 깊은 비판을 가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자유교양대학으로서 바드교도소사업단의 사명 중 하나다. 따라서 미국, 특히 교도소에 내재하는 불평등의 인종적 속성에 대항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교육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그리고 이와 관련한 여러 이유로 인해 교도소 안에서 자유교양학은 독특한 역할을 담당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학문기관들은 오랜 시간에 결쳐 인종 및 여타 불평등의 재생산에 있어서 고유한 역사적 현재적 역할을 맡아 온 당사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교양학이란 이처럼 특정한 평등주의적 또는 해방적 활동,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광범위한 교육적 포부를 받아안을 뿐 아니라 뛰어넘기도 하는 학문이다.
교도소 대학은 미국 고등교육의 사명과 질을 드높이고 건강한 관계와 기회, 성장을 경험할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수감자의 인간성을 옹호하는 한 가지 방안이다. 그러나 대량 구금 문제에 대응하려면 근본적으로 양형 방식을 개선하고 처벌의 목적과 정당성을 인종주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법과 문학'은 내가 바드교도소사업단에서 전국적으로 유사한 교육과정을 연결하는 작업 같은 여타 업무에 더 깊이 몰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진행한 강의 중 하나였다. 강의 전반에 결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세밀하게 읽어 나가면서, 책이 기반한 19세기의 시대적 배경과 상징 구조, 도스토옙스키가 내적 대화와 외적 대화의 끝없는 연쇄라고 가정한 의식과 양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보여 주기 위해 복잡하게 얽어 놓은 장치들에 주목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입법부부터 미국 교육부와 주요 쟤단에 이르기까지, 교도소 대학을 교육이 아니라 교정 정책의 산물로 바라보는 경우가 여전히 너무 많다. 자유교양학은커녕 더 폭넓은 고등교육 기회 제공이라는 목표도 아닌, 형사사법적 지표에 근거해 사업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평범하게 과거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상당히 짤막한 회상에도 아주 특별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입학 면접 중이라든지, 강의실 밖에서 편하게 스쳐 지나가는 도중에 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교육은 꼭 받도록 해. 그건 누구도 절대 네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니까." 문득 나는 내 가족 중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가족 역시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에는 수 세대에 걸쳐 고질적으로 이어 내려온 상실과 박탈의 경험이 서늘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역에서 교도소 페지주의 운동가를 포함해, 솔직히 말해서 개혁주의적이고, 민간기금으로 운영하며, 선별적으로 입학 절차를 진행하고, 내부 교과과정을 재정치화하기를 거부한다는 동 수많은 이유를 들며 바드에 분개하는 활동가를 많이 만났다.
작게는 획기적인 순간이랄 게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수감 생활은 길고 힘겨운 여정이다. 단조로운 환경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생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경험하는 역사를 박탈당하는 위험이 처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감형된 사형 선고처럼, 살아 있되 단지 나이만 먹는 존재로 그저 머물러 있는 거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따금 유난히 젊은 외모를 유지하던 장기수들이 갑자기 몇 년을 건너뛰며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이 든 모습으로 변하는 걸 볼 때면 괴상한 방부제처럼 작동하는 교도소가 새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학생들이 교도소와 대학 양쪽의 요구에 균형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 끝없는 규칙과 장애물의 미궁 속에서 협상을 벌여야 했던 그 조건이, 내게는 항상 이 교육 기회를 지키기 위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암묵적으로 얼마나 많은 요구를 그들에게 했는지를 보여 주는 표지로 느껴졌다. 분명 학생들에게는 그런 독촉이 전혀 필요치 않았다.
다음은 조지프가 보내온 답장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대니얼. 역할 반전 축제는 암스테드 박사님의 '국민의 형성' 수업에서 나온 것이었죠.
제가 이해하기로 역할 반전 축제란 권력자가 노예에게 정부를 구성해 보라고 자리를 만들어 주는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었어요. 이 행위를 함으로써 노예는 권력자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동시에, 권력자로 하여금 '무력한' 자들의 올분을 풀 기회를 베풀게 해 주는 중요한 기능을 했어요 노예들은 지배층의 모습과 '주지사 선거'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며 케이크워크(19세기 미국 흑인이 백인 상류층의 걸음걸이를 희화하며 추던 춤으로, 백인이 우승한 흑인에게 케이크를 상으로 주어 prize walk라고도 한다)를 합니다.
하지만 그 선거에서 뽑히는 '주지사'는 권력자와 협상할 권한이 있었어요. 날이 저물면 그 권한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데, 언제나 그렇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주인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 그날 연설에는 학생들이 축하/졸업 행사가 끝난 뒤에 반드시 권한을 다시 넘겨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넘겨쥐야 하겠지만, 교도소와 교도소 안에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지닌 강력한 의미를 우리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다고. 권한을 그저 뒤집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함으로써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간으로서, 졸업식을 조룽하고 우리 자신이 조롱당한다고 느끼는 상황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이에요.
(전략) 교도소는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불평등 재생산 기관이 되었다. 대학은 여전히 중간총과 상류층을 형성하는 기관으로 작용한다. 교도소는 수많은 분석가가 '구금 국가' (carcera state)라고 일컫는 이 나라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수감 경험은 미국의 빈곤층, 그중에서도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경험이 사회학자 브루스 웨스턴의 표현으로는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의 생애 주기에서 '양식화된' 체험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학과 교도소는 여전히 우리가 다양한 민주적 자아상을 상상하고 구축하는 장으로 남아 있다. 이 사실이 사회 전체와 그 기관을 통과하는 개인, 관계망,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교도소 대학'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에서 이 두 기관은 특권과 불평등의 재생산에서 나란히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현대 미국에서 불평등은 상이한 이 두 가지 생애 경로, 즉 한편으로는 대학을, 다른 한 편으로는 교도소를 통하는 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영국과 미국의 정치 전통이 갖는 기이한 관련성과 뚜렷한 차이로 인해, 그(윈스턴 처칠)의 발언이 어쩌면 이 주제에 대한 미국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견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내무장관 시절 하원에서 처칠이 한 연설은 전문을 인용할 가치가 있다.
"범죄와 범죄자 처우를 대하는 대중의 정서와 감정은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피고인, 심지어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라 할지라도 국가에 대항할 권리가 있다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인정하는 태도, (....) 치료 및 재생 방안을 찾아내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 그리고 찾아낼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보물이 담겨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 이러한 것이 범죄와 범죄자 처우에서 한 나라가 쌓아 올린 힘의 총량을 드러내는 상징이며, 그 나라 안에서 작동하는 미덕의 표지이자 증거입니다.
십 대 시절 라이커스섬에 수감 중이던 이지는 이후 12년을 보내게 될 주 북부 중경비 교도소로의 이감을 앞두고 현실을 잊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가진 것은 다 잃을 수 있어. 벌어서 얻은 것은 언제든지, 항시 빼앗길 수 있거든. 하지만 배운 것은 달라. 그건 누구도 네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단다."
처음에는 마치 마약을 하듯, 현실도피를 위해 책을 읽었다. 게걸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닥치는 대로 읽어 댔다. 이지가 책 읽기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끈질기고 느리고 집요하게 그러모은 책 더미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쓴 이 단어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배운 것만큼은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니 배우라고 한 어머니의 언명에 담긴 힘이 느껴졌다.
- 대니얼 카포위츠, 교도소 대학(College in Priso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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