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적응

2017년 보고서에서 영국에 기반을 둔 엘런 맥아더 재단은 '의복을 입는 평균 횟수의 중가'가 어쩌면 의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옷의 착용 횟수를 두 배로 늘리면 의류업계의 기후 오염을 거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전 세계가 의류 생산을 1년간 정지하면, 1년간 모든 국제선 운항을 중단하고 해상운송을 멈추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수백만 명이 그 옷들을 생산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동자 대다수는 의류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가난한 국가에 산다. 세계에서 옷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그다음은 방글라데시로, 이 국가는 미국 절반 규모의 인구가 아이오와보다도 작은 땅에 산다. 방글라데시는 제조업 일자리의 3분의 1 이상과 수출의 거의 85퍼센트가 의류 산업에서 나온다. 주민의 5분의 1이 국가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국가에서 의류 산업이 400만 명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의류 산업 종사자 열 명 중 여섯 명은 여성이다.

무언가가 너무 저렴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있다. 마헤르의 직원들은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한 달에 120달러에서 140달러를 버는데(국제 기준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기준으로도 낮은 금액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패스트패션의 주기가 빨라질수록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 공장 문밖에서는 국가가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원칙을 무시한 결과 발생한 환경 피해를 건뎌야 한다. 한때 '동양의 댄디'로 알려쳤던 나라양간지의 공기는 보통 회색빛이 도는 황토색이며 가끔 외국 방문객에게 구역질을 일으킨다(나라양간지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기적처럼 파란 하늘이 나타난 도시 중 하나다).
방글라데시는 기후변화의 타격이 가장 극심한 국가 중 하나인데, 방글라데시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부유한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데도 그렇다(예를 들어 독일이나 일본보다는 25배가량 낮고, 미국이나 캐나다보다는 약 40배 낮다). 방글라데시의 영토 대부분은 히말라야의 물이 흘러내리는 방대한 저지대의 강 삼각주에 위치해 있어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더 강력한 사이클론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해수면이 높아지는 상황에 특히 취약하다. 마헤르가 대학을 다닌 도시인 치타공은 현재 거의 1년 내내 만조 때마다 곳곳에서(도시의 60퍼센트) 홍수가 발생한다. "물이 가정집까지 차올랐다 빠져요." 마헤르가 말했다. "점점 베네치아처럼 되고 있죠. 이 베네치아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요. 이 도시의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물에 누가 빠져 죽고 싶겠어요."
그러나 마헤르를 가장 짜증나게 하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피해, 바로 그의 회사에서 생산한 옷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지켜보는 모욕감이다. "Z세대와 밀레니얼은 윤리적 상품을 요구합니다." 마헤르가 말했다. "하지만 패스트패션 티셔츠를 4달러, 또는 2달러에 살 때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어떻게 이 티셔츠가 베를린이나 런던, 몬트리올에서 이 가격에 팔릴 수 있지? 어떻게 4달러에 목화를 재배하고, 솜을 만들고, 실을 잣고, 엮고, 염색하고, 날염하고, 꿰매고, 포장하고, 운송할 수 있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과 닿아 있는지 전혀 몰라요. 자기가 낸 돈이 그들의 임금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의류업계의 가장 큰 위험은 쇼핑의 둔화가 아니라 쇼핑을 둔화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마헤르는 말했다. 수십억 명이 이미 충분한 옷을 소유한 세상에서 옷을 계속 구매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불필요한 수요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불필요한 수요를 발생시키는 방법은 유행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유행을 가속화하는 방법은 옷을 더 자주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다. 옷을 그만큼 저렴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품질과 노동조건, 임금 및 환경기준을 무시하는 것이며, 방글라데시는 오래전부터 이런 일상의 재앙을 살아내고 있다.

토라야(일본의 제과회사)에서 만드는 과자는 와가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와가시가 사로잡는 감각에는 무려 청각도 포함되는데, 하늘 여행, 아와의 바람, 사라시나의 가을달처럼 고요한 심상이 머릿속에 떠오르도록 개별 이름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밤의 매화라는 이름을 가진 까맣고 단단한 작은 양갱이다. 양갱을 자르면 하얀 통팥의 단면이 드러나고, 그 모습이 '캄캄한 밤에 희미하게 빛나는 하얀 매화와 그 떠다니는 향기'를 상기시킨다.

토라야는 때때로 '에노키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역사가 긴 가족 기업의 사례다. 에노키앙은 1981년에 제라르 글로탱이 만든 용어로, 당시 글로탱은 1755년 프랑스에서 아니스 리큐어 회사로 첫 등장한 가족 기업 마리 브리자드의 사장이었다.  (중략)
가족 기업의 역사는 그동안 간과되었다. 가족 기업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연구원들이 밝혀낸 내용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족 기업이 전체 회사의 약 70퍼센트와 전체 노동력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기업은 경제의 '히든 챔피
언'이라 불린다. 이러한 가족 기업으로는 작은 구멍가게,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 미용실, 열쇠공, 도급업자, 프리랜서, 의사 및 번호사, 회계사 사무실 등이 있다. 이들은 우리의 이를 치료하고, 신발을 수선하고, 양복을 드라이클리닝하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집 조경을 말아주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를 구워주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술집이나 카페를 운영한다. 이들은 코로나19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동네 주민이 파산을 막기 위해 결집하는 사랑받는 지역 사업일 확률이 높다.

구로카와는 사업을 할 때 딥타임(수익 창출과 성장 속도 등의 단기적인 목표 대신 사회, 환경적으로 더 나은 실천과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사업관) 사고가 단기적 사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까? 그는 차분한 사람이며, 내가 둘 다 중요하다는 대답을 기대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물론입니다'라고 말했따.
구로카와가 역사적 교훈을 하나 더 알려주었다. 1915년 도쿄는 신사를 짓고 신성한 숲을 조성해 얼마 전 붕어한 천황을 기리기로 했다. 당시 선택된 지역은 도시 외곽의 축축한 농지였다.
임학자들은 이 계획을 여러 단계로 나누었다. 가장 첫 단계는 얼마 없는 소나무 주변에 10만 그루의 어린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100년 뒤에는 참나무와 밤나무, 녹나무 같은 활엽수가 자라나 야생의 숲을 이룰 것이었다. 계획에 참여한 그 누구도 살아서 최종 결과물을 볼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성숙림이 하라주쿠역을 따라 완만한 언덕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차분함이 흐르고 폐로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푸른 휴식처이며, 사방으로 도쿄라는 대도시의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구로카와는 딥타임 비전의 탁월함에 경외감을 느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마침내 그가 말했다. "인간 삶에 어떤 열의를 가질 수 있나요?"

토라야의 모토는 "전통은 계속되는 혁신이다"이다. 프랑스어로 번역한 문장은 더 완강하다. "전통은 혁명의 연속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윤 추구의 동기가 혁신을 이끈다고 주장했지만, 그 또한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은 아닌 듯 보인다. (중략)
수천 가지 사례가 혁신은 돈과 성장을 위한 욕구에서 나온다는 개념을 반박한다. 아마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레는 우주에서 수익을 내려는 목적보다는 냉전 경쟁과 탐구열의 결과에 더 가까있던 1969년의 미국 달 착륙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이메일인테, 이메일은 프로그래머 레이
톰린슨이 정부자금을 받은 인터넷의 전신 아르파넷을 연구하다가 부수적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이후 톰린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후원자였던 미 국방부는 이메일이 필요하다는 류의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내 상사도 이메일에 관해 뻥긋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이메일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투자금 10억 달러를 끌어들이려고 덧없이 사라질 또하나의 앱을 만들려는 현대 스타트업과는 완전 딴판이다.

대침체가 한창일 때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 폴 볼커는 모기지 담보부증권처럼 세계경제를 쓰러뜨린 새 금융상품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이 상품들은 우리가 더 많이 만들고자 하는 훌륭한 혁신이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20년간 내가 본 가장 중요한 금융 혁신은 ATM이었습니다. 이 기계들은 사람들에게 진짜로 도움을 줬습니다." 볼커의 이 연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소비문화는 그 미친 듯한 활기에도 불구하고 종종 원자화되며 개인적이다. 홀로 함께 있는 군중인 것이다.

대거넘(바킹 대거넘 자치구)의 참여자들에게 에브리원에브리데이(우리가 다른 무엇보다 '참여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가 문을 열기 전에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었다. 쇼핑을 하거나, 손톱 관리를 받거나, 술집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거나, 당일치기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갔다는 대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해서 들은 대답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였다. 
"이 동네에서 14년째 살고 있어요." 다비리가 말했다. "제가 하는 거라곤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집에 처박혀 있는 것뿐이에요. 출근을 안 하는 주말에도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온 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갈 때까지 집에서 안 나가요. 우리 가족은 저와 대니엘라뿐이에요. 아이가 매일 물어봐요. '엄마, 우리 어디 가?'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하죠. '아무 데도 안 가.'"
알고 보니 바킹 대거넘은 적어도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는 참여 문화를 실험하기 완벽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소비사회에서 우리의 제1 역할이 일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면 대거넘 주민 상당수가 사회에서 배제된다. 많은 사람이 꾸준한 일이 없거나 은퇴 후 소득이 매우 적거나 무직 상태이며,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내야 할 돈을 내고 나면 쓸 돈이 없을 만큼 소득이 적다. 바킹 대거넘 자치구는 소비사회에서 소비할 여유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유함이란 기이한 것이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이 기본적인 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것은 1세기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반면 부유함은 절대적인 사치나 편안함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과 비교한 사치 및 편안함과 관련이 있다.

리바운드 효과(기술과 사회적 행동의 변화에서 비롯한 뜻밖의 결과)가 우리를 시작 지점보다 더 나쁜 곳으로 이끌 때 이를 '역효과'라 한다. 우리는 역효과 경제, 역효과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리바운드 효과는 다방면으로 이상하다. 에너지 체제에서의 기술화에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엘리자베트 뒤치케에 따르면, 어떤 리바운드는 '도덕적 허가', 즉 좋은 행동으로 나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경향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비건 식단을 하기로 결정한 뒤(육류 생산에서 발생되는 탄소 배출량이 많기 때문에) 비행기를 더 많이 타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독일의 한 연구는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운전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뒤치케는 좋은 연비가 더 크거나 힘이 좋거나 호화로운 자동차를 사도 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전기차
를 구매한 노르웨이인들은 휘발유차를 탈 때보다 볼일이 있을 경우 자동차를 더 많이 사용했다. 실제로 전기차 이용이 늘어나면서 겨울에 전기차를 미리 덥혀놓거나 쇼핑하는 동안 반려견이 편안히 있게끔 차 에어컨을 틀어놓는 등의 다양한 낭비 행위가 더 많이 보도되었다. 뒤치케는 이러한 리바운드 메문에 의도적으로 '녹색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조차 본인의 생각보다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아예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는 환경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충족감을 연구하는 마렌 잉그리드 크로펠트는 주류 소비습관에 저항하는 네 종류의 집단을 관찰해 이들이 환경 파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이는지를 살펴보았다. 네 집단은 각각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고자 하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 돈 절약을 좋아하는 알뜰한 소비자, 돈 쓰기를 싫어하는 구두쇠, 적극적 선택으로 소비를 줄이는 자발적 단순주의자였다. 이 네 집단 중 자발적 단순주의자가 환경 파괴를 줄이는 데 단연코 가장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2위를 차지한 구두쇠보다 거의 두 배나 효과적이었다. 알뜰한 소비자들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줄이지 못했고, 이는 친환경적 소비자도 마찬가지였다. 녹색 소비가 최근 몇십 년간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전반적으로 실패한 사실이 개인적 차원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지구에 흔적을 덜 남기며 살아가고 싶다면,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사람보다는 더 간소하게 사는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4부> 변화

사람들은 자신이 자연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 하나는, 인간 세계가 뒤로 물러나면 자연 세계가 앞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바다에서 가장 빨리 발생하는데, 바다에 사는 생명체들이 매우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 생명체들은 사람이 사라진 것을 감지하고 그 빈 공간을 찾아와 헤엄친다. 팬데믹 동안 자연이 복원되고 있다는 최초의 증거들은 불현듯 한산해진 물속에서 주로 나타났다. 고요하고 깨끗해진 베네치아 운하에 물고기와 해파리가 나타났고, 인도 콜카타에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트(목욕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가의 거대한 계단) 근처에 강돌고래가 등장했으며, 멕시코의 인기 해번에서는 악어들이 파도를 탔다. 프리들랜더는 똑같은 원리가 육지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꾸준히 이어지던 인간 활동의 압박이 사라지면 야생동볼이 되돌아와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탐험 욕구를 비롯한 자신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을 드러낸다. 자택 대피령이 내려진 시카고에서는 코요테 한 마리가 이른 아침 텅 빈 시내를 구경하며 까르띠에와 구찌, 루이비통 매장 앞을 지나다녔다. 인도 북부에서는 코끼리들이 오래 전 인간이 침범했을 때 버리고 떠난 오래된 이동 경로를 되찾았다. 그중 한 마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사원의 계단을 오르기도 했다. (중략)
"사람들은 자신이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있고 효과적으로 생태계를 관리하는 법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프리들랜더가 말했다. "자연은 우리보다 스스로를 훨씬 더 잘 관리합니다. 그냥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면 돼요. 숨쉴 공간을 주는 거죠."

마이클 S. W. 리가 찾은 반소비자와 소비자의 또다른 핵심 차이는 폭넓은 '관심의 영역'이다. 즉 이들은 개인적 필요를 넘어서는 문제에 관심이 더 많
다. 반소비자는 기후변화와 생물종의 멸종, 인종차별, 빈곤처럼 불안하고 우울하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할 수 있는 문제에 더 많이 관여한다. 이러한 주제에 관여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인데, 이는 삶을 유의미하게 하지만 아마 쾌활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오이카와는 부자인 상태로 사도섬에 오지 않았고, 앞으로 부자가 되리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곳으로 이사한 이후 그는 유토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유토리는 영어로 직역할 수 없는 또다른 단어로, '우리의 일상에서는 유토리를 찾아볼 수 없다" 같은 표현에서 쓰인다. 이 단어의 대략적 의미는 숨 쉴 여유라는 뜻에서의 여유다. 유토리는 어떤 이에게는 든든한 저축액이고, 어떤 이에게는 넉넉한 시간이나 아름다운 주거 환경, 차분한 정신,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자유다. 대다수의 유토리는 앞에서 말한 것들의 전부나 일부가 섞여 있을 것이다.

하타의 오가와마치 이주는 천천히 이루어졌다. 처음에 그는 도쿄로 통근을 했다. 그러다 유기농 농장의 물류 일을 맡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새로 전입한 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오늘날 사람들을 오가와마치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요인은 유기농업이다. 1970년대에 한 선구적인 농부가 이곳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했고, 그의 제자들이 서서히 주변에 퍼졌다. 한때는 오가와마치 주민 대부분이 매일 열차를 타고 도쿄로 출근했 듯 거의 모든 농산물이 도쿄로 보내졌다. 그러나 도쿄의 물살이 빠져나가면서 현재 오가와마치는 유기농업을 경제의 기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타가 나를 데리고 간 식당도 유기농 음식을 내놓는다. 슈퍼마켓도 지역 소유로, 오가와마치 생산자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 양조장은 반경 4킬로미터 이내에서 가져온 재료로 맥주를 만든다. 심지어 지하철역에서 파는 도넛도 유기농 두부를 만들고 남은 물로 맛을 낸다. 요즘에는 많은 곳에서 이와 비슷한 가게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한때는 평범한 교외 지역이었던 곳에 이러한 가게들이 이만큼 집약된 것은 본 적이 없다.

많은 수렵, 채집인 문화가 과잉 수확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부시포테이토를 제철에 다 수확하지 않고 남겨두면 부시포테이토가 다시 번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어쩌면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 것은 오래된 의미의 경제 행위일지 모른다. 자원이 미래에 사라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긴 노동시간은 주콴시가 생각하는 풍족한 삶의 개념을 훼손한다. 자발적으로 간소하게 살아가는 이들과 비슷하지만 그들보다 더 강력하게, 주콴시는 칼라하리사막의 한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쉽게 충족할 수 있는 필요만 아주 적게 가짐으로써 케인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다. 더 적게 가진 삶에 주어지는 보상은 본래 풍부한 여가시간이어야한다.

주콴시가 간소한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한 이론에는 저마다의 진실의 일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주일 치 식량을 가져올 수 있는데도 하루이틀 치 식량만 채집해온 이유를 내가 보기엔 그 무엇도 명확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게다가 이들은 가뭄에도 똑같이 행동했다.
주콴시와 세계 소비사회의 또다른 분명한 차이를 고려하면 이 모든 것은 더욱 불가해 보인다. 그 차이는 바로 주콴시가 나눔을 아주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주콴시에게 적용되는 '나눔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따뜻하고 어렴풋한 개념이 아니다. '부의 재분배' 라는 용어조차 이들의 행동을 정확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재산은 국가가 집행하는 세법 및 임금법, 또는 개인 기부자가 자기 재량에 따라 나눠주는 자선기금을 통해 재분배된다. 주콴시에게 나눔은 권리와 책임을 수반한다. 이곳에서는 내게 없는 것을 누군가 갖고 있을 때 그것을 나눠달라고 (보통 직설적으로) 요청할 권리가 있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나눔 요구'라 칭한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얻으면 그것을 공유할 책임이 있다. 주환시가 지침으로 삼는 일반 원칙은은 그것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나보다 가진 것이 더 적고 같은 믿음을 고수하는 사람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오늘날 니아에니아에서 수행하는 나눔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메건 로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은 '타인에게 취약한 상태'가 되라고 요구받는다.

간소한 삶과 가난의 차이는, 하나는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이 아니라는 데 있다고들 한다. 

 

- J.B. 맥키넌, THE DAY THE WORLD STOPS SHOPPING/디컨슈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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