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가장 나쁜 점은 삶의 내용인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데 있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어떤 트렌스젠더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수술 후로 미루며 일상을 유예한다. 어떤 지방대생은 명문대 편입에 성공한 후에 시작될 '진정한' 대학생활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공부한다. 어떤 여성은 다이어트, 성형 등을 통해 아름다워진 후에 세상에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사회적 약자는 정상성을 획득한 후에야 '남들 같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으며 현재를 무한히 유예하는 사람들이다.

페이스북의 시초는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사이트다. 이름에서 이미 알 수 있듯,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대학 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할 목적으로 사이트를 만들었다. 패이스매시에 접속하면 두 학생의 사진이 나란히 뜨고, 이용자는 둘 중 더 'hot'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투표 결과에 따라 학생들의 외모 순위가 매겨졌다. 이 사이트는 하룻밤 사이 약 5,000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후에 주커버그는 보안 위반, 저작권 침해,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하버드대학 행정위원회에 기소되었지만 징계나 처분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후에 그는 이 사이트에서 있었던 경험을 발전시켜 페이스북을 창립했다. 2018년에 있었던 페이스북 청문회에서 페이스매시의 성차별성이 다시 한 번 조명되며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탈코르셋은 나, 관계, 미래, 삶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전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성은 왜 당연히 화장을 하는가?'라고 물었을 뿐임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제까지 다시 물었"던 것이다.  / 이민경, '탈코르셋', 한겨레출판, 2019 재인용

인스타그램에서는 여전히 성차별을 증명하라는 질문을 벗어나기 어렵다. 마치 수학 교과서에서 '집합' 단원만 까만 것처럼, 여성들은 매번 첫 페이지로 돌아가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는 통계와 성폭력 사건에 관한 뉴스를 공유한다.
이것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거나 싫어하는 주변인을 기다려주고 이해시키고 함께 성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반대로 페미니즘 논의를 늘 입문 수준에 머물게 할 수도 있다. 현재 상황이 페미니즘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알아가게 하기보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들이 공부한 것을 '리셋'하게 해 수준을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다보면 페미니즘은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포장해야 하는 브랜딩의 대상이 되고 만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식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 상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람이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낯섦과 불쾌함이 앎의 시작이다. 그런데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셀카를 보정하듯 페미니즘을 보정하게 된다. 페미니즘에서 급진적이거나 우둘투둘한 부분을 모두 깎아내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매끈한 부분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정상성에 도전하는 페미니즘은 보정을 거쳐 정상성을 승인받고자 하는 대상으로 협소해진다.
문제는 인스타그램에서 페미니즘이 정치성을 상실했음에도 여성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소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성들은 '확실한' 불이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거나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개인은 운동에 기여하거나 헌신한다고 느끼기 쉽다. 실제적인 변화의 폭에 비해 여성들이 소진되는 정도가 너무나 큰 기이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페미니즘은 무엇을 하려는지보다 페미니즘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꺼내는 개인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다. 사회정의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페미니즘 사상은 페미니즘이라는 텅 빈 이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공허한 투쟁으로 남기 쉽다.

인스타그램의 모든 기능은 이용자가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획득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사용자와 계정이 1대 1 관계를 맺고 있어 발화자에게 이목이 쏠린다. 피드가 계정주의 '온라인 생애'를 한눈에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로 기능하며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준다. 다양한 집단군의 사람을 한꺼번에 대면한다. 계정 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팔로워 수'를 통해 타인의 반응과 관계 변동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다. 자신이 연출한 이미지가 타인에게 통했는지 매 순간 '좋아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가 해시태그를 통해 게시글에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인스타그램은 이용자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김지효, 인생샷 뒤의 여자들, 오월의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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